50대 뛰어넘은 2030 빚…"경매 나온 영끌 집, 영끌족이 낙찰" [빚에 짓눌린 청년]
지난 13일 서울북부지법 제101호 법정 앞 게시판엔 41개 경매 물건 목록이 붙었다. 이 중엔 권모(34)씨가 지난 2020년 가을에 산 서울 노원구 전용면적 41㎡(13평) 아파트도 포함됐다. 4억5000만원에 이 아파트를 산 권씨는 이 중 3억원을 은행 대출로 마련했다. 이후 아파트를 담보로 한 P2P 대출(온라인 투자연계금융업체가 채무자와 채권자를 바로 연결해주는 중금리 대출)로 2억여원을 세 차례에 나눠 더 빌렸다. 사실상 아파트값 전부를 빚으로 마련한 전형적 ‘영끌 투자(영혼까지 끌어모으듯 빚을 내 자산을 사는 사람)’였다. 빚으로 빚을 막던 권씨가 한계에 다다르자, P2P 대출업체는 결국 아파트를 경매에 넘겼다. 아파트를 산 지 3년도 안 돼 생긴 일이었다.
2030 가계부채 50대 처음 넘었다
30대 이하 청년층의 가계대출 잔액이 50대를 넘어선 것은 가계부채 DB가 작성된 2012년 이후 2020년이 처음이다. 이 시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적으로 초저금리 기조가 확산하던 시기다. 최근 고금리로 청년층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소 둔화했지만, 여전히 50대보다 많은 상황은 유지되고 있다.
영끌 투자에 부채 급증…경매도 늘어
청년층 가계부채가 급증한 가장 큰 이유는 영끌족의 등장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급격한 집값 상승을 경험한 이들이 무리한 부채를 부담하면서 아파트 구매에 뛰어들자, 관련 빚도 증가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올해 1~10월 전국 아파트 매매 중 20·30대 매수는 11만406건으로 전체 31.4%(20대 4.5%, 30대 26.9%)를 차지했다. 30대 아파트 매수 비중이 40대(25.9%·9만1184건)를 추월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내 집 마련하러, 평일 낮 경매장 찾는 청년들
무리한 투자로 경매에 나온 영끌족의 물건을 노리는 것도 청년이었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13일 북부지법 입찰 법정에 온 50여명 중 20·30대의 수는 약 15명에 달했다. 빌라를 낙찰받아 월세 소득을 얻기 위해서, 혹은 경매를 공부하기 위해서 등 저마다 목적이 달랐지만 두드러진 건 실거주용 아파트 경매였다. 앞선 집값 급등기 ‘내 집 마련’에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 경매시장에서 ‘두 번째 기회’를 찾는 것이다.
신혼집 마련을 위해 이날 법정을 찾은 30대 여성 A씨는 “아무리 영끌해도 집을 못 살 것 같았는데 경매는 유찰로 값이 깎이니, 내 집 마련에 도전해볼 만한 것 같다”고 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고금리 상황인 만큼 실수요 위주 시장이 된 데다 입찰에 참여하는 연령대가 많이 낮아진 추세”라고 설명했다.
“베이비부머 부동산, 청년이 영끌로 재구매”
사회 구조적 영향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저금리 시대에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가 별다른 부채 축소 없이 빚으로 부동산 가격을 계속 밀어 올렸고, 이렇게 값이 오른 부동산을 청년층이 그대로 재구매하다 보니 부채를 한계 상황까지 끌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집값이 말도 안 되게 오르면서 청년들에게 허탈감을 주고, 집값에 대한 지나친 기대심리를 준 측면이 있다”며 “청년들이 무리해서 집을 마련하도록 유도한 환경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영끌 투자 받쳐줄 다음 세대 없어”
막대한 원리금 부담에 청년 세대가 소비를 줄이는 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청년층 부채의 85% 내외가 주거 관련 부채”라며 “순 자산이 부족하고 추가 대출 여력이 부족한 청년층은 소비를 큰 폭으로 줄여 중장년층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 위원은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인상되면 청년층이 소득의 약 3.3%를 원리금 상환에 추가로 지출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60대 이상이 1.2%를 추가로 지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출산·고령화 가속화로 인구가 줄면 주택시장 위축이 불가피해져 현 청년층이 받는 타격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영끌로 마련한 자산을 높은 가격으로 받아줄 다음 세대가 없다는 점에서다. 강 교수는 "청년층의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를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며 "소득 수준을 넘는 무리한 빚은 위험하다는 점에 대해 청년 세대에게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효정·김남준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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